라오스에서 받은 3kg의 선물

 

 

#1.

라오스에 가기 전 대부분의 친구들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묻고는 했다. “가서 먹을 건 있대?”, “안 그래도 너 피부 예민한데 더 안 좋아질 텐데, 걱정 안 돼?”, “그런데는 왜 가는 거야? 고생만 하다 올 텐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들임과 동시에 가기 전에 나 역시 가장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던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지금 나는 이런 걱정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이었는지 잘 안다. 나는 라오스에서 몸무게가 3kg이나 늘었고, 피부는 탱글탱글 더 좋아졌으며,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성장했던 값진 한 달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으니까. 이런 걱정들은 모두 우리가 가진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뿐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더라’ 는게 내 한 달간의 느낌이다.




#2.

도착한 첫날의 라오스는 내가 한국의 옛날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도심지에서는 잘 포장된 도로가 옆으로 2층, 3층짜리 건물도 상당히 흔하게 관찰할 수 있지만, 마을로 조금만 들어오면 흙먼지 날리는 울퉁불퉁한 흙길위에서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를 하며 뛰어놀고 그 옆으로는 대엿마리의 누런 황소들이 느릿느릿 줄지어 걸어간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사바이디-’ 인사하며 환하게 웃어주고 우리를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마치 소설 소나기에 묘사된 동네와 같은, 영화 클래식에서 나온 산골 마을의 한 장면과 같은 평화롭고 아름자운 마을이었다.

 첫날은 이국적인 자연의 모습과 마을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 그리고 외국에 왔다는 들뜬 마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여겨졌으나, 이곳에 관광을 온 것이 아님을 곧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원 활동이라는 목표 아래,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이곳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가야 했다. 밑이 보이지 않는 우물에서 막 퍼 올린 물로 샤워를 하고 이를 닦으며, 우물물을 길어다 녹슨 드럼통 안에 채워놓고 그 물을 요리와 설거지할 때 사용해야 했다. 라오스가 생산하는 수출품 중 하나인 시멘트 생산 공장이 마을 근처에 있어, 멀리서 간간히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석회암을 실은 덤프트럭들은 끊임없이 마을을 가로질러 다녔고 매일같이 자욱한 흙먼지가 날렸다.

 둘째 날부터 든 생각은 내가 과연 여기서 잘 살다 갈 수 있을까였다. 목표는 현지사람들이 사는 것과 같이 그들의 이웃 그리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삶 속에 녹아들어가 한 달을 보내고 오는 것이었고 해내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씻을 물도 없을 것이라던가 음식이 전혀 입에 맞지 않을 것이라던가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그들의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해보자고 마음먹으면서부터 진정한 워크캠프가 시작되었다.




#3.

이번 워크캠프동안 나는 두 가지의 소중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나의 똥고집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이 항상 옳다고만 믿어 온 독불장군이었다. 그러나 캠프에 참가하고 한 달 동안 활동하면서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가 어느 누구에게나 다 옳다고 여겨지지는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캠프기간동안 영어 전공자도, 사범대 학생도 아닌 내가 영어 교육을 도맡아 수업을 책임지게 되면서 항상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내가 한국에서 수업을 들을 때에는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었는데 여기에서는 왜 통하지 않을까? 나는 다른 방법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왜 여기 캠퍼들은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을 원하는 걸까? 매 교육시간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방식이 효과적이지 않을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세 번째 교육이 이루어지던 날 저녁 회의시간에 한명의 동료캠퍼가 조심스레 교육에 대한 솔직한 자신의 비평을 해준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에 대해 직접적인 비평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내가 믿어왔던 것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이상적인 방법은 아닐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편견들을 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진심을 다해 귀 기울이게 되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우리 한국인의 시각이 아닌 현지 라오 캠퍼들의 시각으로 보기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성인이지만, 이곳 라오스에서는 세상을 처음 경험한 갓난아이와 같다는 자세로 마음을 비우고 같은 눈높이로 맞추자, 그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일방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서로가 서로를 더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서로가 자연스레 변화했다. 수업시간에 점점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일상생활에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단어를 사용하고 발음을 신경 쓰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 한국인 캠퍼들 역시 더욱 더 자극을 받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배운 것이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고민하면서 다름을 존중하게 되고, 자연히 서로의 진심을 알고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게 되었다는 것은 큰 깨달음 이었고, 고집스러웠던 나를 한 층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4.

한 달간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고민을 하고 성장하게 만들었지만, 아쉬움 역시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많은 단기 해외봉사단이 안락한 호스텔에서 지내며 가끔씩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면 요리해먹으며 한국을 그리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가 굳이 불편한 마을 청소년 센터 시멘트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자며 지역 청년들과 24시간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따른 것은 우리가 선택한 자발적인 빈곤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것임에도 더 노력할 수 있었는데도 부족했던 점이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라오 캠퍼들은 우리 한국인 캠퍼들이 현지의 향신료를 잘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약한 향신료만 넣은 요리를 해주었다. 우리는 그들이 쓰는 것의 두세 배나 되는 물을 사용하며 샤워를 하고 빨래했다. 낮에도 실내에 불을 밝히는 것이 익숙한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대낮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생활했다. 캠프가 한창일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곳 한국에 돌아와서야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배려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한국에서의 삶과 다른 점을 발견하면 불편하다든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습관적으로 내리고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자신의 삶의 방식과 다른 행동을 하고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해도 언제나 웃으며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많은 진심어린 배려를 받고 있었던 것임을 알면서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고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행동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5.

라오스 생활동안 우리는 라오캠퍼들에게서 많은 배려와 도움을 받았다. 여러 고마운 사람들 중에서, 특히 진심을 표현하는 법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을 꼽자면 나는 망설임 없이 ‘묵’이라는 이름을 가진 꼬마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을을 떠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멀리서 마을 여자아이 한명이 나를 불렀다. 술래잡기를 하며 같이 놀아주고 마을 행사 날 우리들 머리를 예쁘게 따주었던 그 친구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나에게 불쑥 선물을 내밀었다.

 꼬깃꼬깃한 포장지로 포장한 선물을 풀어보고는 눈물이 날 뻔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장미꽃 조화와 핑크색 리본장식, 라오스에서 어떻게 구했을까 싶은 귀여운 산타클로스 모형의 오너먼트와 태국에서 건너왔을 타이동전 일곱 개...... 그 아이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자신의 보물 상자 깊숙이 보관해왔을 것이 분명한데 그 소중한 보물을 나에게 주고 싶다고 내미는 것이었다. 마치 소설속의 위그든 씨가 사탕 값으로 버찌씨를 소중히 받는 것처럼 나는 두 손으로 선물을 받아들고는 그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비록 작은 열쇠고리 선물 뿐 이었지만 묵이는 그 선물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며 나에게 뽀뽀해주었다.

 그런 묵이를 보고도 나는 미안한 마음 뿐 이었다. 아이가 준 선물은 자신이 보물처럼 아끼는 것임이 분명한 선물이었지만 내가 준 것은 나에게 있어 보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지만 진심을 담아서 선물한 묵이의 선물의 값어치와는 비교할 수 가 없었다. 나는 라오스에서 내가 많은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나는 그들의 삶으로부터 지식이 아닌 감성을 배우고 또 배우고 돌아왔다.




#6.

라오스에서 얻은 3kg은 내가 받은 많은 선물의 합이다. 이제는 친구가 된 현지 캠퍼들에게서 받은 우정과 배려, 마을 촌장님과 이웃들, 꼬마 친구들에게서 받은 환한 미소와 사랑, 그리고 내가 라오스에서 느끼고 배운 많은 생각과 고민들, 이 모두가 녹아있다.

 내 양 팔목에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들이 채워준 바씨 끈이 그들의 마음과 매어져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순수함과 진심을 담은 마음으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라오스에서의 한 달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이 되어주었다.



+ Recent posts